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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아서 더러워 보이는 것뿐인데, 방금 빤 청바지를 꺼내어 입고 가도 청바지가 더러워졌으니 세탁해야겠다고 일깨워주는 나의 잘나신 친구 메르세데스가 들으면 믿지 않고 비웃겠지만 나에게도 남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고작 스무 살 남짓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나는 내가 가진 시간의 상당수를 어떤 옷을 입을까 생각하는 일로 허비하곤 했었다. 나의 마음보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때였다. 그때의 나는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습으로 꾸미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당시 나에게 있어 다른 이의 평가는 매우 중요하게만 여겨졌다. 하지만 수집이라도 하듯 구두를 잔뜩 사서 옷과 색깔을 맞추어 신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흐지부지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게 된 사건이 특별히 있지도 않았건만 마음이 늙어서인지 그냥 그렇게 변했다. 여행을 핑계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모든 것이 시들하게 여겨졌던 것 같기도 하고, 멋지게 잘 차려입음으로써 타인에게 얻은 호감의 지속력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요즘 나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헤드셋에 스카치 테이프를 칭칭 감고 정말 거지 같은 차림을 하고도 즐겁게 길거리를 돌아다니곤 한다.


2019년 새해가 온 기념으로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 다시 한번 정리를 했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그다지 많지는 않다. 내가 가진 물건이라고 해봐야 누가 보면 비웃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참으로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충분하게, 혹은 턱없이 많게 느껴지는 그런 물건이었다. 물건에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는 일에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돈 쓰는 일은 매우 즐겁기만 한 일이었으니 아무리 단출한 삶을 꾸리려고 애써도 짐이란 것은 줄기보다는 늘어나기가 더 쉬운 법이었다. 꼼꼼히 살펴보면 쓰지 않고 소유만 하고 있는 세간살이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난 한 해 동안 쓰지 않고 소유만 하고 있던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주는 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상자에 담아 두었던 물건을 꺼내 들고 앞으로 사용할 일이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은 좀 귀찮았지만, 에스프레소에 가깝게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의 도움으로 짐 정리를 마쳤다.


과일 가게 미라 아주머니를 비롯하여 달걀 가게 꾸야까지, 동네 사람들은 나를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외국인으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나에게도 직업이 있었고 그 직업 때문에 늘 어깨가 시원찮았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세가 나빠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깨 근육에 늘 뭉친 느낌이 있는 편이고, 조금만 육체노동을 해도 개구쟁이 꼬마가 내 어깨 위에 앉아 등 쪽으로 발길질을 해대는 느낌을 받기 일쑤였다. 그 잠깐 짐 정리를 했다고 어깨가 뻐근함을 느끼면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마사지샵에 갔다. 그런데 마사지샵의 테라피스트는 좀 재밌는 사람이었다.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을 한 나를 곁눈질해서 보더니 여행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대뜸 중국인이냐고 묻고는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꽤 만족해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무슨 엉뚱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얼굴에 확연히 드러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안 좋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불완전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쩐지 더 끌리곤 했다. 표정에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유형보다 좀 더 친밀감 있는 유형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보를 듣자마자 갑자기 수다스럽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더니 내게 한국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는 시종일관 친절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는데 여간 정성스럽지가 않다. 나는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녀가 국적부터 캐물었는지를 깨달았다. 비나투어 운전기사 아저씨들에게 중국인 손님은 절대 팁을 주지 않아서 한국인 손님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그녀의 기대 어린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기꺼이 팁 100페소 주고, 다음에 또 오라는 이야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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